Page 57 - 2024년3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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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는 살코기가 맛있고 기름이 많아 신석기인에게 귀한
식량이었다. 그러다 멧돼지가 가축으로 사육하기에 좋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멧돼지는 잡식성이
라 무엇이든 잘 먹고 야생에서 20~30마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습성이 있어 여러 마리를 가둬놓고 사육할 수 있었다.
자궁이 길어 한 번에 5~8마리의 새끼를 낳고 병에 잘 걸리
지 않았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약
6500년 전, 이집트는 약 5000년 전, 중국은 한(漢)족이 황
허 유역에 정착하고 농경사회를 구성한 약 4500년 전부터
돼지를 기르기 시작했고, 그 후 중국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715년 이전에 돼지 사육
을 담당하는 ‘양저부’라는 관직명이 있었고 이에 대한 전문
가도 있었다. 일본에서 돼지고기의 용도는 주로 식용이었
지만,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도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돼지와 관련한 기록은 다른 가축과 함께 옛 문
헌에서 볼 수 있다. 고대 부족국가 시대에 읍에서는 돼지를
길러서 고기를 얻고, 그 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고, 그 기름 수 있듯 소동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메뉴다. 소동파가 송
을 발라 추위를 막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 나라 신종 때 장쑤 성 쉬저우 지사로 부임한 그해 여름 대
나라에서는 적어도 2000년 전부터 돼지를 사육했다는 것 홍수가 났다. 소동파는 군졸과 백성을 이끌고 70일 동안
을 짐작할 수 있다. 부여의 부족장 명칭으로 우가, 마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방을 쌓아 쉬저우가 물에 잠기는 것
저가, 구가 등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가축의 하나로 돼지를 을 막아냈다. 홍수가 지나간 후 백성들은 소동파가 돼지고
사육했음을 알 수 있다. 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돼지고기를 갖다 바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라에서는 돼지와 양을 사육하 쳤다. 소동파는 돼지고기를 삶아 백성들과 나눠 먹으며,
고 있지만, 살생을 삼가는 고로 국왕이나 대신이 아니면 돼 스스로 요리 이름을 ‘동파육’이라 지었다.
지와 양의 고기를 먹지 못하며,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 이처럼 돼지고기를 특히 좋아한 중국 사람은 그 맛을 높이
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 평가해 돼지고기를 모든 육류 중 으뜸으로 여겨왔다. 특히
으로 가축을 많이 식육하지 않았지만, 상류층에서는 돼지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 중 비계의 맛을 가장 좋은 것으로 생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해 “돼지비계의 맛을 제대로 알면 비로소 중국의 맛을
아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백성들이 소동파에게 바친 돼지고기
역사 속 최고의 돼지고기 마니아는 아마 소동파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위 ‘삼겹살’
중국 송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적벽부’를 지어 유명한 소동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육류’ 하면 단연 삼겹살이
파는 시인이면서 유명한 정치가였고, 중국 역사상 손꼽히 떠오른다. 1인당 4일에 1회 정도는 삼겹살 1인분을 먹는다
는 미식가이기도 했다. ‘동파육’은 이름에서 쉽게 짐작할 는 통계가 있을 정도. 사전에는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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