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2018년 12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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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이야기
어떤 인간에서 고마운 천사로
토요일 오후, 평소보다 좀 일찍 귀가했다. 아내는 허리를 편 김에 뒷뜰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서더니
아내는 뒷뜰에서 딸이 조각을 한다고 말하면서 같이 가보 이내 한쪽 장갑을 마저 주어들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뜨락에
자고 했다. 있는 수돗가에서 그 장갑을 주물러 빨았다. 여름 햇살에는
숨 막히는 무더위가 찌고 있는 뒷뜰에서 딸은 그야말로 땀 빨래도 금새 마른다
을 뚝뚝 흘리면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참 후, TV 앞에 앉아 있는 내게 아내는 매우 행복하고
잠시 구경을 한 후 좀 거들어주고 싶은 생각에서 어질러진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다가오며, 새것이 된 목장갑 한 켤레를
뜨락 한편을 아내와 함께 쓸어모으는 중에, 아내가 또르르 흔들어 보이면서 여름 내내 쓰겠다고 말했다. 정작 어떤 인
말린 목장갑 한 짝을 주어들며, “어떤 인간이 이걸 남의 집에 간이 고마운 천사로 변한 순간이다. 그 모습에서 나도 덩달
다...”하고 속앓이를 시작했다. 아 마음이 훈훈해지고 있었다.
필경, 옆집 리모델링 공사장 옥상에서 일하던 건축 노동자 목장갑 한켤레, 동네 철물점에서도 단돈 몇 백 원이면 살
누군가가 작업이 끝난 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목장갑 한 짝 수 있고, 열 켤레 한 뭉치에는 몇 천원에도 구입할 수 있다.
이 담을 넘어 우리 집 뒤뜰에 떨어졌을 것이다. 오늘의 화폐가치로 보면 큰 부담될 액수는 아닐 수 있다. 그
공사장 인부들은 목장갑을 사용 후엔 벗어서 아무 데나 버 러나 생활화된 소시민의 근검절약 정신, 풍요의 시대를 살아
리고 가는 게 대다수이다. 가는 오늘의 우리가 보여줘야 될 진정한 덕목은 과소비가 아
그것을 두었다가 다시 쓰거나 빨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닌 검소로 미래를 맞아야 될 것이기에.
허리를 펴며 무어라고 더 화풀이를 하려는 아내에게 나는 글 정관모(C아트 뮤지엄 대표, 성신여대 명예교수)
얼른 “목장갑 하나 없이 마당 쓰는 당신에게 빨아 쓰라는 천
사의 선물인데...”라고 아내의 입을 막았다.
december 2018
56 december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