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2025년4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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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국을 번갈아 먹기 때문에 왼손이 비교적 자유로워 채
소를 쥘 여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쌈을 먹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근거는 아직까지 드러난 바
없다.
그럼에도 쌈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식문화라는 데는 이견
이 없다. 어떤 식재료에 다른 재료를 올려 싸 먹는 음식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지만, 보통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밀
가루·쌀가루·옥수숫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피에 채소나 고
기를 싸 먹는 형태가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처럼 잎채소를
쌈의 주재료로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쌈의 대명사, 상추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알려진 쌈의 종류는 상추쌈, 고기쌈,
김쌈, 다시마쌈, 연잎쌈, 밀쌈, 전복쌈, 보쌈김치 등 아주
다양하다. 그중 가장 먼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상추쌈이 내어 불에 끓여 쌈에 싸서 먹는다. 쌈에는 세파(실파)와
다. 상추는 삼국시대부터 먹어온 채소인데, 원나라에 머물 쑥갓을 항상 곁들여 담으라”고 소개하는데, 우리가 아는
던 고려의 궁녀들이 고국이 그리워 상추를 심어 쌈을 싸 먹 오늘날의 상추쌈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조선 시대 마지
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몽골인 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 상궁이 고종과 순종을 위해 궁에서
도 상추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좋아 인기를 끌었다 내놓던 상추쌈 차림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시의전서> 내
고. 심지어 원나라 시인 양윤부는 <원궁사>의 ‘난경잡영’에 용처럼 연한 상추, 쑥갓, 실파를 채반에 담은 것은 물론,
“해당화는 꽃이 붉어 좋고 살구는 누래서 보기 좋구나. 더 그 외에도 절미된장조치, 병어감정, 보리새우볶음, 장똑
좋은 것은 고려의 상추로서 마고(표고버섯)의 향기보다 그 도기, 약고추장 등을 준비하고 참기름을 종지에 담아놓는
윽하구려”라며 상추를 소재로 시를 읊기도 했다. 이 시의 등 그 구성이 오늘날보다 더 다채롭고 화려하다는 사실을
자주(自註)에는 “고려 사람은 날채소에 밥을 싸서 먹는다” 알 수 있다.
는 내용도 함께 담겨 있다. 이로 인해 몽골에서 상추쌈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상추씨의 값이 천금같이 비싸졌는 복을 비는 의미로 먹거나 제물로 바친 쌈
데, 이에 대해 청나라 때 문헌 <천록식여>에서는 “고려의 쌈은 단순히 자연의 신선한 맛을 즐기는 수준에서 복을 비
상추는 질이 매우 좋아 상추 씨는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는 매개체로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정월 대보름에 먹는 복
있어 천금채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쌈이 있다. 조선 시대 헌종 때 홍석모가 우리나라의 세시
상추쌈을 만드는 법은 조선 말기 조리서 <시의전서>를 통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대보름에는 채소
해 전해진다. “상추를 정히 씻어 다른 물에 담고 기름을 잎이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한다”
쳐서 저으면 기름이 상추에 다 배니 잎을 펴서 개어 담고, 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복쌈에는 한 해 농사가 잘되길 바
고추장에 황육(쇠고기)을 다져 넣고 웅어(멸치과 바닷물고 라는 마음과 다가오는 여름 더위를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
기)나 다른 생선을 넣어 파를 갸름하게 썰고 기름 쳐서 쪄 음이 함께 담겨 있는데, 무엇보다 풍년이 중요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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