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2024년6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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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뛰어나고, 재배하기 쉬우며, 조리하기도 간편한 감자
            를 빨리 받아들여 주요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에만 의존한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1840년대 아
            일랜드에 감자마름병이 퍼지면서 감자를 구하기 어려워졌
            고, 이로 인해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이 죽거나 이민을

            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유럽 대륙의 전
            체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18세기 말 1억9500만 명에서
            19세기 중반 2억8800만 명으로 늘어난 것.

            그 중심에는 감자가 있었다. 대량생산하게 된 감자를 식량
            으로 활용한 이유도 있지만, 워낙 생산량이 많다 보니 돼지
            를 대량으로 사육하는 데 사료로 쓰면서 19세기 후반 돼지
            고기 생산량과 소비량 또한 급증했다. 즉 감자의 보급은 육                  빠르게 자리 잡았다. 고랭지면서 일교차가 큰 환경이 감자

            식 문화 발전으로 이어지며 인구 증가, 활발한 도시화, 산                  재배에 최적의 조건이라서 오늘날까지도 감자 하면 강원도
            업혁명 등 역사적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를 먼저 언급할 정도다. 국내 감자 생산 시기는 온도의 차
                                                              이가 있어서인지 수도권에서는 6~7월이면 감자를 수확하

            다양한 경로로 한반도에 빠르게 정착한 감자                           는 데 반해, 강원도에서는 9월에 감자를 출하한다. 제주도
            한반도에 감자가 들어온 시기는 19세기 초반으로 추정한                    는 강원도에 뒤이어 감자를 다량 생산하는 지역으로, 날씨
            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북저는 일명 토감저                   가 온화한 탓에 겨울인 1~2월에 감자를 수확한다. 여느 나

            라 하는데 순조 24~25년에 관북에서 처음 들어온 것이다”                 라보다 빠르게 감자가 주요 작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 감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관북은 중국과 접하는 함경                  자 생산량은 2013년 72.7만 톤에서 2017년 44.4만 톤으로
            도 북쪽 지역으로, 사람들이 감자를 북쪽에서 들어온 감저                   감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양곡 소비량 조사’에

            (고구마)로 생각해서 북방감저(북저, 북감저)라는 이름을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감자 소비량은 1년에 1kg
            붙였다.                                              이 채 되지 않는다. 감자를 주식으로 섭취하지 않는 데다
            감자가 한반도에 정착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다양한 조리 방식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
            있다. 청나라 사람이 산삼을 캐려고 국경을 넘어 백두산 지                  하지만 북한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농촌진흥청이 추정 발

            역에 오래 머물면서 심어 먹던 감자가 퍼졌다는 설이 있고,                  표한 ‘2017년도 북한의 곡물 생산량’에 의하면 감자류의 생
            1832년 영국 상선이 우리나라 해안에 잠시 머물던 중 외국                 산량은 53만 톤이다(북한의 인구는 우리의 절반 수준). 이

            인 선교사가 씨감자 재배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는 쌀 219만 톤, 옥수수 167만 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하지만 외래 문물의 전래 과정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반도                   것으로 감자에 대한 높은 식량 의존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 감자 정착 역시 어떤 하나의 경로가 아니라 동시다발적                   뉴스에 따르면 최근 북한은 최대 감자 생산지인 양강도에
            으로 이뤄졌다는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을 것이다.                       대단위 감자 가공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2020년 완공을

            우리나라 사람은 긴 세월 동안 토란, 도라지, 인삼 등 뿌리                 목표로 새로운 감자 전분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등 감자 생
            식물을 먹어왔기 때문에 유럽처럼 감자에 대한 거부감이                     산과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크지 않았다. 특히 논농사가 어려운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출처 <뉴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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