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2021년10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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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별미, 게국지 맛을 아십니까?
태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게국지다. 요즘에는 방송에 자
주 등장해 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게국지는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다양한 명칭으
로 불리는 태안의 토속음식이다.
게가 많이 잡히는 태안에서는 예로부터 간장게장을 담가
먹었다. 게를 건져 먹고 남은 국물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
었다가 김장하고 남은 허드레 배추와 나박하게 썬 늙은 호
박과 함께 버무려 숙성시켜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게국지
다. 게가 한 번 몸을 담갔다 나온 간장 국물은 감칠맛이 일
품. 식감이 거칠고 맛이 떨어지는 허드레 배추도 이 국물에
숙성시키면 살짝 쿰쿰하면서도 한국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
는 짭조름한 김치로 재탄생한다. 사나흘 지나 배추와 호박
에 적당히 간이 배면 냄비에 담아 보글보글 지져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처음 먹었을 땐 짜고 쿰쿰하다고 느낄 많아요. 짜기만 하고 건져 먹을 게 별로 없는 옛날 게국지
수 있으나,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꼬릿하게 숙성된 배추의 가 젊은 사람들 입에는 잘 안 맞을 수도 있지요. 그래도 우
맛과 달착지근한 호박의 궁합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사 리 집에서는 묵은지와 호박은 꼭 고수해요. 세월이 가고 입
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밥 줄어드는 건 시간문제다. 맛이 변해도 음식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니까. 안 그래요?”
하지만 요즘 게국지는 예전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묵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어도 최소한의 원칙은 지키고
지 찌개에 꽃게, 대하, 호박을 넣고 끓인 해물탕의 일종으 싶다는 오복꽃게집의 게국지는 잘 익은 묵은지의 진한 국
로 변했다. 시대가 변하면 입맛도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물과 꽃게의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독성 강하고 쿰쿰한 옛날 게국지 맛을 더 이상 볼 수 없 푹 익은 늙은 호박을 밥 위에 으깨 비빈 후, 꼬릿한 묵은지
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를 올려 먹다 보면 밥 한 그릇을 어느새 다 비웠는지 모를
“예전에 먹던 게국지는 이런 맛이 아니었어요. 못살던 시 정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위장이 야속하기만 하다.
절 먹던 음식이다 보니 들어가는 재료가 뭐 있나. 질긴 배 한방 재료를 넣고 달인 간장물로 숙성시킨 게장도 이집의
추랑 호박이 다였지. 그래도 푹 삭은 게국지를 냄비에 보글 주력 메뉴. 한방 재료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이 꽃게 속살에
보글 끓여 먹으면 밥맛이 꿀맛이었지요. 지금은 추억의 음 배어 있어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또 속살은 얼마나
식이지만, 그 시절에는 진짜 먹고 살려고 만든 서민 음식이 튼실하게 들어찼는지, 꽃게 다리를 들고 쪽쪽 빨면 부드러
었어요.” 운 게살이 먹음직스럽게 빨려 나온다. 게장의 백미는 주황
게국지를 전문으로 하는 오복꽃게집의 오광석 사장은 안면 빛 통통한 알을 밥 위에 얹어 비벼 먹는 것. 바다 냄새 솔솔
도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무수히 많은 게국지를 먹어왔 풍기는 알들을 긁어내 밥에 넣고 비비면 달큼한 감칠맛이
고, 그 경험을 살려 10년 전부터 안면도에서 꽃게 요리 전 돌아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비운다.
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올가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을 바다의 맛이 꽉 들어
“요즘에는 묵은지도 아닌 그냥 배추를 넣고 끓이는 곳도 찬 태안으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뉴트리앤>
october 2021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