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2025년1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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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밥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는 물론 경제개발에 기 시작했다. 대구에서는 육개장의 원조인 대구탕반, 개성
박차를 가하던 1960~1970년대 서민을 위로하고 배고픔 에서는 편수와 만둣국, 전주에서는 콩나물해장국에 모주
을 해결해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여기에 막걸리나 소주를 를 함께 먹는 탁백잇국, 서울에서는 쇠뼈를 넣고 푹 끓인
한잔 곁들이면 지친 몸과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드니, 국 설렁탕을 팔았다. 특히 읍·면 소재지에 상설 시장과 오일
밥은 서민의 든든한 끼니이자 고마운 안주임이 분명했다. 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파는 ‘장터국밥’이
세월이 지났어도 국밥에 대한 따뜻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큰 인기였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 노동
뜨끈한 국물, 든든한 식사, 넉넉한 인심…. 그래서 우리는 자를 위해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식사를 파는 곳이 늘면서
여전히 배고프고 허전할 때 국밥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각 지역별로 다양한 국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칼바람 부
1920년대 접어들어 근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도시에 는 추운 날씨에 더욱 생각나는 뜨끈한 국밥의 맛을 따라 전
서는 탕반점(湯飯店)이라는 국밥집이 골목마다 자리를 잡 국을 여행해보자.
각 지역별 고유한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전국 국밥 열전
서울 설렁탕
설렁탕을 떠올리면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김 첨지의 대사가 툭 튀어나온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뿐 아니라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는 1920년대 당시 설렁탕의 인기를 증명
한다. 골, 도가니, 양지머리 또는 사태, 잡뼈 등을 모두 넣고 끓인 설렁탕은 국물에 밥을 만 형
태에 초점을 맞추고 국밥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유래는 크게
선농제 기원설와 몽골 기원설로 일축한다. 선농제 기원설은 워낙 유명하고, 몽골 기원설은 육
당 최남선이 주장하는 바로 몽골에서는 맹물에 소를 삶아 먹는 ‘슐루’라는 음식이 있는데, 이것
이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 덧붙여 요즘은 설렁탕에 소면이 빠지지 않지만, 196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의 영향을 받아 소면을 넣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강원도 황태국밥
차례상에 올리는 탕국에 황태를 넣는 강원도에서는 명절날 황태를 두드리는 풍경이 펼쳐지고,
평소에도 황태해장국을 많이 끓여 먹는다. 그만큼 황태는 강원도 사람에게 친숙하다. 황태는
명태를 일교차가 큰 덕장에 걸어 차가운 바람과 햇볕만으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 만드는데,
명태가 잡히는 곳이나 얼렸다 녹이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곳 모두 강원도이기 때문. 황태를
넣고 푹 끓여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밥을 말아 한술 뜬 다음 황태를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
이다. 누런 황태는 부드러우면서 쫄깃하고 깊은 맛이 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명태가 동해에
서 보이지 않으면서 강원도에서 황태가 귀해졌는데, 2017년 12월 중순에 인공 양식한 어린 명
태 15만여 마리를 동해에 방류했다니 우리 황태를 다시 만날 그날을 고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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