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2025년1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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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경향신문에는 “무교탕반에서는… 특별히 간장을
            소중히 여겼다. 요즘은 국 끓이는 데 간장은 빛깔만 내고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 유행하지만, 탕반에는 소금은
            절대로 쓰지 않고 말간 장(국간장)만 썼다. 그렇기 때문에
            장국이 거의 빛이 없는 것처럼 말갛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 대목으로 미루어볼 때 당시 많은 사람
            이 국밥을 장국밥이라 부른 연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이어 흥미로운 내용이 이어지는데 “무교탕반의 특색은 손

            님이 보는 앞에서 말아주는 데 있다. 방에 앉아 지켜보며
            기다리는 손님이 군침이 돌도록 한다”는 내용에서 오늘날
            오픈 키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국
            과 밥을 말아 제공했다니, 그 옛날에도 손님을 위한 퍼포

            먼스는 존재했던 모양이다.


            최초의 배달 음식이자 패스트푸드

            국밥은 국내 최초의 배달 음식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발행한 잡지 <별건곤>(1929년 10월)에서는 “설렁탕
            집주인은 옛날 백정이던 사람이 많았고, 옹기그릇에 담아

            내니 장국밥에 비해 차림새가 점잖지 못했다. 이에 한때
            양반이던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설렁탕 한 그릇 먹기가 쉽
            지 않은 일이었다”고 전한다. 이에 설렁탕을 먹고 싶지만

            체면상 차마 식당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식당에서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배달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
            르는 짜장면보다 설렁탕의 배달 역사가 더 길다니 흥미로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국밥은 서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
            다. 주막이나 장터에서 이동이 잦은 보부상을 위해 빠르

            고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음식으로 만든 것이 국밥의 시초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국밥이 전국의 장터를 중심
            으로 발달해온 것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주모가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사

            람들에게 국밥을 떠주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국밥은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패스트
            푸드이자 외식 메뉴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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