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2025년1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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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일품 메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빨리 한 끼를 때워야 할 때, 든
든한 식사가 생각날 때 우리는 국밥집을 찾는다. 구수한
쇠고기국밥부터 든든한 순대국밥, 개운한 콩나물국밥까
지 어떤 식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국
밥은 겨울에 더 반가운 음식이다.
지금은 밥과 국이 따로 나오고 먹는 사람이 국과 밥을 함
께, 또 따로 먹을 수 있는 따로국밥이 보편화됐지만, 사실
국밥은 주방에서 국에 밥을 넣어 한 그릇으로 만들어져 나
오는 음식을 말한다. 이는 밥을 보온하기 어려웠던 시절
에 밥을 따뜻하게 먹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보통은 뚝배
기에 담은 밥 위에 뜨끈한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기를 반
복하는 ‘토렴’으로 밥을 부드럽게 덥힌 후 마지막에 국을 다. 탕반은 소의 양지머리를 푹 삶아 건져 양념하고, 뚝배
부어 국밥을 냈다. 기에 밥을 담은 후 장국을 붓는다. 국밥 위에는 고명으로
토렴이라는 조리방법은 같은 쌀 문화권 중에서도 우리나 고기, 산적, 도라지나물, 콩나물 등을 푸짐하게 얹어 내놓
라에만 유일하게 있는 식문화다. 일본에서 밥에 녹차 물 았다. 당시 한양에는 무교탕반과 같은 장국밥을 파는 탕
을 부어 먹는 오차쓰케가 그나마 국밥과 비슷하다고 할 수 반집이 인기였는데, 탕반집에서 우려내는 국물은 큰 가마
있지만, 밥에 각종 고명을 얹고 뜨거운 찻물을 부어 먹는 솥에서 오래 끓이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그 맛을 흉내
방식은 국밥과 다소 차이가 있다. 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밥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안타깝게도
언제부터 밥과 국을 한 그릇에 담아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 김홍도의 ‘주막’
해 정확한 설은 전해지지 않는다. 국밥의 유래 중 가장 유
력한 것은 ‘설농탕’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1964년 동
아일보를 보면 “옛날 서울 동쪽에 선농단이 있었고, 또 그
곳은 농사에 관계된 신농씨와 후직에게 제사 지내던 곳인
데… 그 무렵 선농단 밭머리에 큰 가마를 걸고 국을 끓여
서 상하노소 없이 모두 한 그릇씩 먹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즉, 조선 시대 임금이 선농단에서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가마솥에 끓인
후 백성과 함께 나눠 먹은 최초의 국밥이 설농탕이라는 것
이다.
문헌에 나오는 국밥집에 대한 기록은 조선 24대 왕인 헌
종이 변복을 하고 자주 드나들었다는 ‘무교탕반’이 최초
다. 당시 국밥은 ‘탕반’ 또는 ‘장국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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