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2021년11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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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을 사랑한 우리 민족
건나물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나물을 즐겨 먹었는지
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전통음식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밥이다. 밥을 중심으로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었는데, 그중에
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나물을 활용한 반찬이다. 한국 음식
은 기본적으로 채식에 근거한다. 이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
라의 지리적 조건과 통일신라시대 이후 불교를 중시한 전통이 결합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채소’와 ‘나물’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채소는
사전적 의미로 모든 푸성귀와 남새를 가리킨다. 푸성귀란 사람이 기 속도가 느려 저장성이 좋아진다. 사실 나물은 제철 성격이 강해 수확
르거나 저절로 난 온갖 나물을 말하고, 남새는 사람이 주로 심어서 시기가 분명한 편이다. 인기 많은 나물은 비닐하우스에서 1년 내내
가꾸는 나물을 말한다. 재배하는 나물로는 오이, 아욱, 가지, 토란, 상 재배하기도 하지만, 비용상 대부분 제철 수확 시기에 거둬 소비한다.
추, 부추 등이 있고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물로는 참나물, 도라지, 이 과정에서 남거나 오래 보관하고 싶은 나물은 저장성을 높일 필요
두릅, 버섯, 냉이, 쑥, 달래 등이 있다. 가 있는데, 원재료 고유의 맛을 보존했다가 그대로 즐기기에는 염장
보통 나물이라고 하면 산과 들에서 나는 푸른 잎을 가진 풀만 생각하 법이나 당장법보다 건조법이 제격이었다.
는데, 나물은 식용할 수 있는 풀·나뭇잎·뿌리·채소 등을 통틀어 일 건조법은 나물 고유의 맛과 영양을 보존할 뿐 아니라, 조리하기 전
컫는 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의 초목식물을 포 일정 시간 동안 찬물에 담가 놓기만 하면 되니 전처리가 간편하다.
함한다. 또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냉장이나 냉동을 할 필요가
없어 저장성도 높은 편이다. 이렇게 건조한 나물은 반찬, 국, 밥 등에
영양소는 보존하고 보관은 길게 두루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품요리나 떡에도 활용 가능하다는
식품은 수확한 이후 속도는 다르지만 점차 변질되는 특성을 가진다. 장점이 있다.
변질의 원인으로는 미생물·곤충 등과 같은 생물적 요인, 불안정한 식
품 성분의 화학 반응에 기인하는 화학적 요인이 있다. 식품 저장은 독특한 풍미와 깊은 맛, 꼬들꼬들한 식감
변질 요인을 최대한 제거함으로써 식품의 양적 손실, 영양가 손실 등 건나물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제철 나물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을 최소화하는 수단이자 기술이다. 는 것 아닐까. 봄에 수확한 취나물을 불려 밥을 짓고, 여름에 수확한
건조를 거친 식품은 미생물 발육이 억제되어 두고두고 보관할 수 있 가지를 볶아 반찬으로 곁들인다. 가을에 갈무리한 무말랭이를 무쳐
다. 수분이 많아 부패하기 쉬운 나물도 수분을 일정량 제거하면 부패 밑반찬을 만들고, 각종 버섯 말린 것은 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는다.
즉 겨울은 봄, 여름, 가을에 손질해 건조한 여러 나물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계절이다. 이는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건나물을 통해 보충한 우리 선조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겨울
의 끝자락인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함께 호박·고사리·가지 등 아
홉 가지 건나물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무쳐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는 1년 동안 갈무리해둔 나물을 먹으며 새롭게 시작할 내년의 풍년
을 기원하는 일종의 기원제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이처럼 건나
물은 1년 내내 우리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영양분을 보충해준 고마
운 식품이었다. 출처 <뉴트리앤>
november 2021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