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2021년 5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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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다산의 마지막 습관』
이 책은 내가 굳어지고 텅 비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우울함으로 번질 때 펼쳐보고 기댈 수 있도록 마련한 오래된 조언이다.
저자 조윤제가 다산이 학문의 마지막에서 60년 내공을 비우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
《소학》의 주요 구절 57가지를 가려 뽑아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풀었다.
어른답게 성장한다는 것 이었다. 그는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멈추지 않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귀양 고 계속 성장하기를 바랐기에 환갑에 이르러서 이제부
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약용 또한 그러했다. 터야말로 공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한 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했고,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렸음을 절감했다. 20년에 가까운 세 나를 찾기 위해 나를 비우는 마지막 습관
월 동안 유폐되면서 학문은 더욱 깊어졌지만, 그것을 정약용이 《심경》과 함께 《소학》을 마지막에 선택한 까
알릴 기회도 끊겼고, 전해줄 제자도 구하지 못했다. 자 닭은 이 때문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새로워지
신의 묘지명마저 스스로 써야 할 처지가 되었을 정도 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죽고 매일 새벽
로 그는 완전하게 삶의 바닥으로 내려왔다. 마다 부활하기를 바랐다. 《소학》을 새롭게 풀어낸 이
그러나 정약용은 실망하지 않았다. 후회와 미련으로 책에 ‘다산’을 제목에 올린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다
가득한 삶을 부정하지 않고 기꺼이 끌어안았고, 평생 산의 삶은 《소학》에서 시작해 《소학》으로 돌아가는 여
을 공부에 바쳐 도달한 경지에 안주하지 않고 그 너머 정이기 때문이다.
로 나아가기 위해 육십 년 동안 쌓은 학문을 기꺼이 내 《소학》에서 이야기하는 공부의 핵심은 기본으로 돌아
려놓았다. 다시 채우기 위해 한 갑자의 내공을 비운 것 가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살아가며 감히 실
이다. 행하지 못했던 당연한 이치를 새삼스럽게 하기에,
이미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정약용이 두려워한 바는 《소학》은 유학 경전들 가운데 가장 쉽고 동시에 가장
다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된 채로 늙어가는 것 어렵다. 자료제공 교보문고
지은이 조윤제
고전연구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마케팅실, 삼성영상사업단 (주)스타맥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출판계에 입문해 오랫동안 책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책을 쓰고 있다. 탐서가로 수많은 책을 열정적으로 읽어왔
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논어》, 《맹자》, 《사기》 등 동양 고전 100여 종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문리가 트이는 경험을 하
게 된다.
54 ma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