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2026년6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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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국수를 맛보려면 맷돌이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지 니라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까지 밀을 대신할 수 있는 재료
금이야 동네 슈퍼에서도 메밀가루를 파는 세상이 됐지만, 들로 국수 만드는 걸 시도하면서 한반도에는 다양한 제면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손수 메밀을 빻고 체에 거르기를 술이 발달했다. 땅이 척박하고 기후가 추운 북쪽 지방이 메
수차례 거듭해야 뽀얀 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 밀과 전분을 사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면, 남쪽 지방에
메밀은 거친 땅에서 잘 자라 약 70일이면 열매를 거둘 수 선 밀가루와 옥수수·칡 등 곡물 가루를 섞어 국수 요리를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 마땅한 산물이 없던 보릿고개 때 즐겼고, 충청도에서는 생선국수를, 경북 안동이나 전북 익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목숨줄 같은 존재였다. 밀가루 산 같은 내륙 지방에서는 콩·팥을 이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
와 달리 끈기와 탄력이 없는 메밀로 만든 국수를 먹기 위해 었다.
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밀의 부재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수 종류가 다양해진 건 이북 사람들의 영향
한반도의 국수 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았 이 크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이북의 국수 문화가 남한에 퍼
다. 사람들은 밀 대신 메밀을 이용해 찰기가 없어도 긴 국 진 것이다. 북쪽 실향민은 전쟁 뒤 경기·강원·부산 등지로
수 가닥을 뽑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 흩어져 새로 뿌리를 내렸고 그들은 이북에서 먹던 국수를
남쪽에서는 반죽을 넓게 밀고 접어칼로 썰어 먹는 ‘절면’을 다시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고향의
해 먹었다. 그 대표적 요리가 바로 칼국수다. 북쪽 실향민 맛을 재현했다고 할까. 그래서 국수 문화가 발달한 경기·
이 내려와 면을 눌러서 빼거나 뽑는 ‘착면법’을 전파하면서 강원·경상도에는 이북식 국수로 가업을 잇는 집이 많다.
부터는 한층 다양한 면 요리가 가능해졌다. 전쟁은 비극이었지만 팔도에서 다양한 국수 문화가 꽃피우
메밀이 주재료여도 전분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평양냉 는 계기가 된 셈이다.
면·막국수 등 다양한 면 요리가 탄생했다. 이후 메밀뿐 아 출처 <뉴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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