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2026년6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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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그중 면식(국수)을 으뜸으로 삼았다”라고 기록하며 고려 잔칫날 먹던 귀한 잔치국수
의 귀한 음식 중 국수를 으뜸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만큼이나 사랑하는 국수의 가장 큰
수많은 음식 중 왜 국수를 으뜸으로 꼽았을까? 그 힌트는 매력은 저렴하면서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수의 고향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국수의 오랜 역사만큼 ‘국수’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소담한 소면
중국에는 무려 1200여 가지의 면 요리가 있다고 한다. 중 사리에 멸치 국물을 부어 말아낸 잔치국수다. 면을 삶아 뜨
국 사람은 자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국수를 즐기는데, 거운 기운이 가시기 전에 찬물에 흔들어 씻어 면발이 탱탱
실제로 중국 어디서나 쉽게 국수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 해지면 제멋대로 흐트러진 국수 가닥을 가지런히 모아 한
다. 중국 사람이 국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가늘고 긴 면을 움큼씩 사리 지은 후 멸치·다시마·무를 넣고 팔팔 끓여 진
먹으면 오래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동일하게 한 바다 내음을 더한 맛국물을 붓고, 황색·청색·백색·적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고 생일과 결혼 등 잔치 때 국수를 먹 색·흑색의 오색 고명을 올린다.
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비록 지금은 싸고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대표적 서
민 음식으로 꼽는 잔치국수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
도 잔칫날 같은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
다. 건조해야 잘 자라는 밀은 1년 내내 비가 많이 오는 한
반도 기후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000여 년 전
부터 밀을 주로 수입했다. 밀은 운하를 타고 뱃길을 따라
중국을 출발해 고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추측한다. 한반도에서 밀가루는 결혼식에나 볼 수
있던 귀한 수입 농산물이었던 셈이다. <고려도경>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밀이 너무 비싸 잔칫날이 아니면 국수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잔칫날
에나 맛볼 수 있었던 귀한 국수지만, 한국전쟁이라는 역사
의 큰 파도를 넘으며 신분의 변화가 생겼다. 미국산 밀가루
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가장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귀한
양반가의 호사스러운 음식에서 가난하고 허기진 사람들의
속을 달래는 서민 밥상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잔치국수는 귀족들의 연회 음식에서 서민들의 친구 같은
음식으로 몸을 낮췄다. 그러나 잔치국수 한 그릇에 담긴 ‘좋
은 날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는’ 그 마음은 옛날이나 지
금이나 변함없다.
국수, 전국 팔도를 꽃피우다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서민들의 국수 문화는 어떠했을까?
조선 시대 서민들이 주로 먹은 국수 재료는 메밀가루였다.
56 june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