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2020년 11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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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된장을 추억하다
어머니 손맛과 정성이 담긴 조상 전래의 전통식품 된장.
나물을 무치거나 토장국을 끓일 때는 물론, 비린내를 없애
기 위해 생선과 고기 요리에 섞어 사용했으며, 벌에 쏘이
거나 벌레에 물렸을 때 약으로 바르는 등 된장은 예로부터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 1호였다. 특히 해외에
가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된장찌개는 아담한 뚝배기에 호
박, 두부, 버섯을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소리만으
로도 집 생각이 간절해지는 소울푸드이다.
특히 된장은 예로부터 오덕(五德)이라 하여 “첫째 단심(丹 웰빙 푸드의 대표주자 ‘된장’
心), 다른 맛과 섞어도 제 맛을 낸다. 둘째 항심(恒心), 오 메주콩은 추석 때 나오는 청대콩이 여물어 노랗게 된 것으
랫동안 상하지 않는다. 셋째 불심(佛心), 비리고 기름진 냄 로, 반드시 국산 햇콩으로 만들어야 장맛이 좋다고 한다.
새를 제거한다. 넷째 선심(善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한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겨우내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자는
다. 다섯째 화심(和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룬다”는 사이 좋은 곰팡이 균이 피게 된다.
것을 5가지 덕목으로 삼았다. 된장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잘 띄운 메주로 장을 담글 때 장독에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추와 숯을 장 위에 띄우는데, 이것은 살균과 흡착 효과가
‘고구려가 장양(贓釀, 장 담그기와 술 빚기) 등의 발효성 있기 때문이지만 부정한 것을 막아준다는 주술적인 의미도
가공식품 제조를 잘한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삼국시대 있다. 45일 후 간장을 떠낸 다음 메주를 건져서 으깨면 노
이전부터 된장·간장을 담갔던 것이 삼국시대에 들어오면 랗고 맛있는 햇된장이 되는데, 장이 담긴 항아리는 시간이
서 기술의 발달을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흐를수록 구수한 향기를 품는다. 바로 시간이 깊어질수록
진해지는 우리 전통의 향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우리의 맛 된장에는 맛과 향만 있는 게 아니다. 된장 100g당 열량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가을이 깊어지는 11월이면, 집집마다 128kcal로 단백질 12g, 지방 4.1g, 탄수화물 14.5g 그리고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갔다. ‘장맛’은 한 집안의 전통과 품위 칼슘, 인, 철분, 비타민(B1, B2), 그리고 제6의 영양성분이
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음식 맛은 장 라 불리는 식이섬유까지 함유하고 있어 현대인들의 식생활
맛’이라며 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우리 조상들은 장 담그는 을 통해 약해지기 쉬운 장(腸) 기능을 개선시켜 비만을 해
날짜부터 신중히 정했다. 소시킨다.
조선 명종 때 엮은 <고사촬요(攷事撮要)>에 보면 장 담그 이렇듯 질 좋은 단백질 덩어리인 콩을 발효시켜 만든 된장,
기 좋은 날은 정묘일(丁卯日)이며, 신일(辛日)은 ‘피하라’ 청국장은 그야말로 ‘식탁 위의 보약’이다. 특히 된장의 탄
고 쓰여 있다. <농가월령가>에도 장은 정월에 12간지 중 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지방 등은 면역력이 약해진 현대
말, 호랑이, 소 등 털 달린 짐승의 날에 담그는 것이 좋으 인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이기 때문에, 인스턴트 식품이
며 그 중 으뜸이 말날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매년 입동 나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식단에 빼놓을 수
(立冬) 전후로 김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말날에 메주를 쑨 없는 식품이다.
다. 그때가 메주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출처 <뉴트리앤>
november 2020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