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2020년 2월 라이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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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젠드는 라이온스의 임무에 대해 진정으로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라이온스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40년 이상을 라이온으로 살다
그는 예비회원들을 회의가 아니라 봉사 행사에 초청하라고 라이온스
에 촉구했다. “밀레니엄 세대와 회원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은 지루한
라이온스클럽 모임에 참여해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 동안 앉아 옛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합니
다. 밖으로 나가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느낌을
들기 원하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라이온스에 와서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타운젠드. “사람들이 기꺼이 주고 싶어 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잔이 라이오니즘으로 100% 가득 차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50%가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잔에 담
긴 것을 마셔야 합니다”
40년 이상을 라이온으로 산 타운젠드. 그는 매우 탁월한 국제회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늘 전화를 받습니다. 그때가 몇 시이든, 어느
타운젠드의 아버지는 전직 조종 교관이자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나라에 있든 상관없이 당신에게 그가 필요로 하면 그는 그곳에 있습
그는 7살의 아들에게 비행법을 가르쳤다.
니다”라고 모건은 이야기했다.
드는 아내의 후원자가 되었고, 도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 타운젠드가 사람들로부터 되돌려 받은 사랑을 보면 그가 다른 이들
로 나갔다. “남편은 인구 3만 5,000명의 작고 조용한 타운인 조지아 에게 미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년간 그가 병을 앓고
주 돌턴에서 전 세계 수백만,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나를 데려다주었 있을 때 전 세계의 라이온스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습니다.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에 조직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그의 영향을
타운젠드는 라이온인 동시에 돌턴 제1연합감리교회, 다운타운 돌턴 줄어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세운 모범을 따르는 이들을 통해
개발청, 돌턴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조직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그 그가 끼쳤던 영향은 계속될 수 있다.
리고 최근에는 조지아 주로부터 ‘올해의 판사’로 지명되었다.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늘
매디슨은 “시내를 돌아다니면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알게 그랬듯 전화 너머에 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
됩니다”라며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식료품점에 가기 위해 거리를 걷 다.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는 누군가를 만나면 마치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을 친구로 만 “라이온 여러분, 지금까지 봉사해올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필
들려는 것처럼 아버지는 하루에서 5분 또는 10분을 꺼내 씁니다”라 요한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언제라도 자유롭게 전화하기 바랍니
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었는데, 이는 마음을 쓰 다. 제가 다시 전화를 걸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지 모릅니다. 세상
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방식이었다. 의 어느 부분에 제가 있는지에 달린 거겠죠. 언제나 친절함을 잊지
모건은 “아버지에게 낯선 사람이란 없었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만나 말고, 멋진 일을 계속해 나가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면 그들은 영원히 친구가 되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공동체 있기를…”
의 일원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 글 에린 카스딘
february 2020 17